늑대별 되기/짧은 생각

新민족주의; #1

iulius 2009. 4. 17. 18:30

역사를 보다보면 '만약'이라고 가정하고픈 충동이 일어나곤 한다. 보통은 단순한 호기심에서 상상해 보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우리나라 역사를 생각해 보면, 호기심보다는 안타까움에서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근세 이후 한국사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방비가 조금만 더 철저했더라면
광해군이 왕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면
소현세자가 죽지 않았다면
효종이나 정조가 조금 더 오래 살았더라면
대원군이 좀 더 국제 정세에 밝았더라면
일본이 좀 더 늦게 항복했더라면
김구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반민특위가 해제되지 않았더라면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아쉬운 역사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이 시대를 살고 있어서이기도 하고 이 시대가 아쉬운 역사라기 보다는 성공한 역사와 분노의 역사가 혼재되어 있는 시대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런 상상은 보통 지금와서 그런 생각 해 보았자 뭘하느냐는 체념으로 끝맺음되기 일쑤였다. 그런가하면 이와는 반대의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이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상상인데,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무단통치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일본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875년 운용호 사건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이후가 아닌가 싶다. 강화도조약은 국제조약에 어두웠던 당시 조선조정의 실책으로 한국 근대사를 암울하게 만든 시초가 된 불평등조약이었지만, 솔직히 그 조약 자체가 일반 민중의 삶에 질적인 저하를 가져온 결정적 원인이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그 이후에 조선에 일본 자본이 침투해 들어오면서 조선 경제를 침식해 들어오긴 했지만, 솔직히 조선 민중의 삶이란 이미 70년 가까이 세도정치 하에서 가혹한 수탈에 시달려 온 삶이었다. 일본이 가혹했다고 하지만, 조선도 가혹했다. 일본의 등장은 수탈과 압제의 주체가 조선조정과 양반계급으로부터 일본으로 바뀐 것이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조선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이었다. 1854년의 강제개항 이후 일본의 목표는 아시아의 제국주의 국가가 되는 것이었다. 일본이 제국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조선이 필요했다. 조선은 일본의 제국화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했고, 고조되는 북쪽으로부터의 위협(러시아)에 대한 방파제가 되어야 했으며, 서쪽으로의 진출기지(청)가 되어야 했다. 이 모든 일본의 의도는 필연적으로 조선을 본국 외의 식민지로 보는 시각으로 연결되었다. 식민지와 본국의 차이에 대해 나는 예전에 했던 KOEI의 삼국지라는 게임을 예로 들어보고 싶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에서는 초반에 충분한 군사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그 때 내 근거지 바로 옆의 땅을 점령해서 민심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병사를 마구 징집했
다. 징집된 병사는 매번 본거지로 옮겨 훈련시키고, 점령지의 민심이 반란이 일어날만한 상태로 악화되거나 적군이 점령지로 쳐들어 오면 미련없이 점령지를 버리고 본거지로 후퇴했다.(이후에 발매된 삼국지에서는 어느 한 지역에서의 징병이 다른 지역에서의 민심에도 영향을 미치도록 설계되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점령지였기 때문이다. 점령지는 내가 충분한 역량을 보유하여 완전히 병합하겠다고 마음먹기 전까지는 오로지 나에게 효익만을 제공하도록 의도된 지역이었다. 내가 그 땅을 지키려고 굳이 내 병사를 소모할 필요가 없었으며, 민심을 붙잡겠다고 다른 정책을 쓸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그 지역을 철저히 수탈한 이후에 적에게 내주게 되면 적이 그 지역을 평정하는데 고생할 뿐이었다. (반란이 일어나면 병력에 손실이 생긴다)

이러한 시각이 조선을 바라보는 일본의 시각이자, 식민지를 바라보는 제국주의 국가의 시각이었다. 제국주의 경제는 지배하고 있는 한 지역의 자원을 수탈하여 다른 지역의 부를 창출하는데 투입한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는 수탈되는 지역과 수탈한 자원을 이용하는 지역으로 구분되며, 수탈의 자원에는 광물이나 목재 같은 천연자원 뿐만 아니라 사람도 포함되는 만큼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은 수탈의 대상과 수탈의 주체로 양분된다. 이러한 제국주의의 가장 큰 단점은 내부에서 제도적으로 차별을 받는 제국주의 국가의 구성원이 제국에 대한 소속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수탈받는 구성원의 비율이 높으면 높을수록 제국주의 국가는 내부로부터의 반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으며, 내부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을지라도 외부로부터의 위기가 찾아오면 위기를 견뎌낼 수 있는 전체 구성원의 결집된 역량을 발휘할 수 없다. 국가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위기 때 더 탄압해야 하고, 그 탄압은 더 큰 위기를 불러오며 이와 같은 악순환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질 수 밖에 없다. 현재 군사적 제국주의가 거의 자취를 감춘 것은 제국주의 자체에 내재된 필연적 붕괴시스템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군사적 제국주의 국가들은 제국의 유지기반을 군사력에서 경제력으로 전홤함으로써 그들의 위기를 극복했다. 수탈의 대상은 여전히 수탈의 대상이고 수탈의 주체는 여전히 수탈의 주체이다. 수탈의 주체가 독립된 주권국가라는 것, 그리고 군사력이 아닌 합리와 이성의 탈을 쓴 종속경제가 수탈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만을 제외하면 여전히 세계는 제국주의 시대와 다를 바 없다. (개인적으로 현재 남은 군사적 제국주의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중국은 군사적 제국주의의 성격을 띄었다기보다는 이념의 주입을 위한 성격으로 군사력을 사용했던 경향이 짙었고, 현재에 이르러서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경제적 제국주의로 이행하고 있는데다가 주체가 되는 한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 중국 자체가 쉽게 내부분열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제국주의의 본질은 누군가가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제국 내에서 잘 사는 것에 관한 한 파레토 개선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제국이란 국가라기보다는 경제권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물론, 가능할 것 같다는 시각도 있다. 최소한 지금의 우리들이 누리는 풍요로움은 18세기의 어느 누구도 누려볼 수 없었던 것이니까. 그러나 여전히 전세계 사람의 과반수는 굶주리고 목말라하고 있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남기는 아이스 케냐 한 모금에 들어가는 커피 원두를 만들기 위해서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린 누군가는 쉬는 날도 없이 일터로 내몰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조금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누구나 행복한 세상은 도달할 수 있는 가치일까.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짜피 이 세상은 모두가 다 잘 살 수는 없는 세상이다.





== 新민족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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