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리율/여행기

이탈리아 여행(2013년 6월 1일 - 10일) #4: 처음 만나는 로마 (2일차)

iulius 2013. 8. 28. 10:53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 광장으로 향하는 황제들의 포룸의 거리는 퍼레이드가 지나가기 무섭게 통행이 제한되었습니다. 뒷골목을 통해서 갈 수 밖에 없었는데 과연 로마의 뒷골목에서도 방향감각을 잃지 않을지 약간은 염려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오사카에 다녀왔을 때에는 처음 가 본 도시였음에도 상당히 걱정 없이 돌아다녔었습니다. 오사카 시내는 바둑판과 같이 정리가 잘 된 도로망을 가지고 있어서 방향만 잘 잡으면 위치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었지요. 기본적으로 도시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미도스지선(御堂筋線)과 동서로 가로지르는 나가호리 츠루미로쿠치선(長堀鶴見綠地線)을 기준으로 삼아서 지하철과 도보를 병행해서 다녔는데, 3일째 밤에는 지하철 막차를 놓치고 자정을 넘겨서 오사카성(大阪城)에서부터 숙소가 있는 난바(難波)까지 4km 가까운 거리를 걸어왔는데도 길을 잃을 걱정을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물론 오사카 거리가 워낙 서울 거리 같은 느낌이어서 마음이 편했을 수도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로마는 그런 점에서 잘 정비되어 있을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역사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때 그때의 필요에 따라 도시가 확장되고 보수되고 또 가끔씩은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지하에 묻혀 있는 유적과 유물을 보호하기 위해서 구 시가지에는 지하철이 개설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최소한 관광을 하는 데 있어서는 지하철의 도움을 많이 얻을 수도 없습니다. 지도와 직감에 의지해서 잘 다녀야 했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마음이 쓰이는 점들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일정상 로마 시내를 자유롭게 관광할 수 있는 날이 그렇게 많지 않아 오늘 되도록이면 많이 봐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8박 10일의 여행 기간 동안 이탈리아에만 있다가 온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대체로 한 나라만 다녀오기에는 여행 기간도 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계획을 짜 보면 막상 10일도 부족한 감이 있습니다. 행선지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로 정했고 이 중에 로마에서 4박, 피렌체에서 2박, 베네치아에서 2박을 하는 일정인데, 로마에서 하루는 바티칸 시국을 갈 것이고 하루는 로마 근교의 다른 도시를 갈 계획이어서 실제로는 로마 시내를 볼 수 있는 날은 이틀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그 중 하루는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이므로 온전히 로마에 머무르는 날은 오늘 뿐입니다.


두 번째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볼 것인지 확실히 정하지를 못했다는 점이지요. 아직도 로마 지도는 눈에 익지 않습니다. 로마에서 보고 싶었던 것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감이 없구요. 어떤 경로를 따르는 것이 효과적일지 판단이 잘 서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여행 안내책자에 소개된 추천코스를 따라가면 좋을텐데, 꼭 그 코스 중에는 그다지 관심 없는 곳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마냥 그대로 가는 건 또 내키지가 않네요. 숙소가 남쪽에 있으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보자고 생각하긴 했는데, 시작부터 콜로세움에서 삐걱댄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콜로세움을 다시 올 거라면 그 근처에 있는 유적을 오늘 보는 것도 애매하니까요. 그래서 콜로세움과 패키지 상품인 팔라티노 언덕이나 포로 로마노Forum Romanum는 오늘 일정에서 제외했습니다.


세 번째로는 체력 문제였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걷는 일정인 것도 그렇지만, 일단은 시차적응이 안 되고 있다는 게 걱정이었습니다. 상해에서부터 13시간 30, 인천에서부터 따지면 무려 17시간 만에 도착한 로마의 피우미치노 공항(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 오후 7시였습니다. 6 1일은 이미 26시간째였고 아직도 5시간이나  남아 있었지요. 공항에서도 수많은 관광객 틈에서 함께 입국심사를 받았고 사설 밴을 타고 숙소인 도무스 세소리아나Domus Sessoriana 도착하니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비용은 50유로로 적당한 것 같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숙소를 다 들렀다가 마지막으로 우리 숙소로 오는 바람에 생각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려서 그런지 정말로 피곤하더군요. 그 와중에 방에 형광등이 안 들어와서 직원 불러다 고치고 겨우 짐 풀고 거의 그대로 뻗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 시간으로 오후 11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2시 반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서울 시간으로 오전 9시 반이었으니까요. 잠에선 깼지만 몸과 마음이 같이 피곤하여 일어나 앉은 채로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동이 오더군요. 로마에서 맞는 번째 아침이었습니다. 아침식사는 숙소 비용에 포함되어 있는데, 콜로세움에는 일찍 가서 줄을 서야한다고 들었기에 식사가 제공되기 시작하는 7시에는 이미 외출 준비를 끝내고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덕분에 7시 40분에는 숙소를 출발할 수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오전 7시 40분이 아니라 오후 2시 40분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냥 오후 2시 40분이 아니라, 전날 Door-to-Door로 23시간 동안 여행하고 나서 겨우 3시간 반 밖에 못 잔 날의 오후 2시 40분이었죠. 아무튼 이런 점이 아침부터 계속 마음에 걸리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를 자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정말 잘 구경하고 다니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잘 구경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콜로세움으로 향했습니다.




[ 숙소에서 콜로세움에 이르는 길 ]






숙소에서 콜로세움까지는 1.5km 남짓이라 도보로 15분이면 도착할 있는 거리입니다. 카를로 펠리체 거리Via Carlo Felice를 따라 4~500m 정도 걸어가서 산 지오반니 라테라노 대성전Basilica di San Giovanni in Laterano에 이르러 두 시 방향으로 다시 1km를 가면 콜로세움이 보입니다.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애플맵을 켜 놓은 상태로 숙소를 출발했지요. 숙소에서부터 카를로 펠리체 거리 옆으로는 공원이 하나 있는데, 그렇게 큰 공원은 아니고 그냥 산책로와 잔디밭이 있는 수준입니다. 공원의 길 반대쪽 면에는 그냥 보기에도 수백 년은 되어 보이는 벽돌벽이 공원을 따라 이어져 있습니다. 바로 아우렐리아누스 성벽Mura Aureliane입니다.





[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






아우렐리아누스 성벽은 서기 271년부터 수도 로마를 둘러싸는 형태로 건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Iulius Caesar가 유럽과 북아프리카에 로마에 의한 평화Pax Romana라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 기존의 세르비우스 성벽Murus Servii Tullii을 파괴한지 300년이 지난 때였습니다. 북방 야만족이 이탈리아 반도까지 밀고 내려오는 상황이 반복되자 다시 로마를 성벽으로 둘러싸야 했던 것입니다. 과거에 아치형의 통로가 있었을 자리는 벽돌로 메워져 있었고, 지표면이 상승한 지금의 로마 시에서 볼 때는 그다지 높지 않아 보이지만, 1,700년 전 당시에는 로마를 지켜줄 높고 든든한 성벽이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무력에 의한 평화를 믿을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을 애써 감추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던 성벽이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소 앞에 아무런 표지판도 없이 놓여 있는 이 성벽이 처음 만난 옛 로마의 유적이었습니다. 길 가다 쉽게 만나고 지나칠 수 있는 자리에 그냥 이렇게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이어질 로마 여행의 특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적들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유적들 한 가운데를 돌아다니는 여행이 될 것이었습니다.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콜로세움까지 40분 넘게 걸린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첫 목적지는 콜로세움이었지만, 가는 동안 생각지도 못했던 아우렐리아누스 성벽과 산 지오반니 라테라노 대성전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지요. 산 지오반니 라테라노 대성전은 로마의 주교좌 교회입니다.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로마 교황이 머무는 장소였고, 지금도 즉위한 새 교황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기도 합니다. 숙소에서도 바로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그 내부가 궁금했지만,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하느라 자세히 보는 것은 다음 번으로 미루기로 하였습니다. 다만, 대성전 옆에 있는 오벨리스크에서는 잠시 시간을 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벨리스크라는 것을 처음 보는 것이기도 했고 그 크기가 너무 커서 그냥 갈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 도무스 세소리아나에서 바라본 산 지오반니 라테라노 대성전 ]



[ 산 지오반니 라테라노 대성전 ]



[ 콘스탄티우스 2세Constantius II의 오벨리스크 ]






콘스탄티우스 2세는 기독교를 최초로 공인한 황제로 유명한 콘스탄티누스의 아들입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죽으면서 제국을 세 아들에게 나누어 물려 주었는데, 형인 콘스탄티누스 2세는 막내 콘스탄스의 영역을 침공하였다가 패하여 죽었고, 콘스탄스는 부하장수의 반란으로 목숨을 잃어 결국 콘스탄티우스 2세가 유일한 황제가 되었지요. 이 오벨리스크는 그가 북방 야만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서기 357년의 개선식을 위해 이집트의 카르낙-아문 신전에서 가져온 두 개의 오벨리스크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대경기장에 세워져 있었으나 나중에 여기로 옮겨졌으며, 로마에 있는 13개의 오벨리스크 중에 가장 높은 오벨리스크입니다. 개인적으로 후기 로마 황제에 대한 감흥은 그다지 없었으나 처음 보는 오벨리스크에 대한 감흥은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오벨리스크가 그냥 길에 세워져 있다는 것도 놀라웠구요.


이곳에서 콜로세움까지는 작은 골목길을 따라가면 됩니다. 설마 이 길로 가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 저 끝에 콜로세움이 보입니다. 그 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문득 깨달은 점은 현대화된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부러 중세풍으로 짓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옛날에 지은 건물을 계속 사용하는 것인지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서울처럼 현대화된 건물은 단 한 채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골목에도 볼거리들은 넘쳐났습니다. 이것은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 광장을 향하는 내내 마찬가지였습니다. 지도상의 거리는 짧았지만 가는 내내 주변을 구경하느라, 그리고 이번에는 같이 구경하는 수많은 인파와 속도를 같이 하느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특히나 보통 관광객들이 사진 찍고 지나가는 트라야누스 원기둥La Colonna Traiana 보았을 때는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지요




[ 콜로세움에서 베네치아 광장에 이르는 길 ]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제정 로마의 오현제 번째 황제인 트라야누스Imperator Caesar Nerva Traianus Augustus 서기 119 지금의 루마니아 일대인 다키아Dacia 정복한 내용을 부조로 조각한 것으로 이를테면 그림으로 그린 전쟁기입니다. 트라야누스의 다키아 정복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구상한 제정 로마의 국경선을 초월한 유일한 예외였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북쪽 국경선을 이탈리아의 루비콘강에서 저 멀리 라인강과 도나우강으로 옮겼는데, 플라비우스 왕조의 세 번째 황제인 도미티아누스Domitianus가 서기 74년부터 10년에 걸쳐 라인강과 도나우강의 상류를 연결하는 게르마니아 방벽Limes Germaicus을 구축하였고 트라야누스는 서기 101년부터 106년까지 2차에 걸쳐 다키아를 정복함으로써 도나우강 중류의 방위를 견고히 하였습니다. 카이사르 이후 백년 동안 여러 차례의 원정에도 불구하고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넘지 못하던 로마인들은 새 속주 정복에 열광하였고, 원로원Senatus은 트라야누스에게 지고의 황제Optimus princeps라는 칭호를 헌정하였지요.




[ 라인 강 상류와 도나우 강 상류를 연결하는 게르마니아 방벽 ]



[ 트라야누스 황제가 정복한 다키아 지방 ]






아이러니컬하게도 트라야누스는 파르티아 원정을 나섰다가 로마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이탈리아 밖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만, 그가 다키아를 정복함으로써 제정 로마의 영토는 역사상 가장 넓어졌지요.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두 번의 다키아 전쟁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데, 책에서 그림과 설명으로만 접했던 것을 실제 두 눈으로 보게 되니 상당히 감흥이 컸습니다.






[ 트라야누스 원기둥 ]






트라야누스 원기둥은 트라야누스 포룸Forum Traiani 유적지에 자리잡고 있는데, 처음에는 이것이 맞는지 아닌지 확신할 수가 없어서 지도를 한참 들여다 보아야 했습니다. 확신을 가진 후에도 근처로 갈 수 없어서 아쉬워하며 사진만 몇 장 찍을 수 밖에 없었지요. 앞서 말했듯이 황제들의 포룸의 거리는 고대 로마의 포룸을 반토막내면서 만든 길이기 때문에 그 양 옆으로는 동강난 포룸 유적지들이 널려 있습니다. 여전히 발굴과 연구가 진행 중인 듯 잘 구경할 수 있게 꾸며져 있지도 않지요. 그래서인지 관광객들도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고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조국의 제단으로 가는 길에 있는 오래된 유적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관광객들 틈에서 이천년 전의 과거를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게 쉽지는 않았습니다. 원기둥 꼭대기에는 원래 트라야누스의 동상이 서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지고의 황제 대신 산 피에트로San Pietro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트라야누스 원기둥을 뒤로 하니 드디어 베네치아 광장입니다. 이곳은 "단언컨대" 로마 관광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의 유명한 관광지는 대부분 베네치아 광장에서 도보 15분 이내의 거리에 있습니다. 방금 지나쳐온 남쪽의 콜로세움을 비롯하여 북서쪽의 나보나 광장, 북쪽의 판테온, 북동쪽의 스페인 광장과 트레비 분수가 바로 근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베네치아 광장 그 바로 정면에는 거대한 조국의 제단이 있지요. 고대 로마의 향기에 취해서 고작해야 백년 전에 지었을 뿐인 조국의 제단을 보는데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지만 앞으로 보아야 할 것이 산더미였습니다. 오전부터 꼬여버린 일정을 정비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배를 채워야 할 때도 왔구요. 오전 내내 특별히 무언가를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벌써 정오가 다 되었습니다. 로마 시내에서의 첫 식사는 역시 파스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슬슬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