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리율/여행기

이탈리아 여행(2013년 6월 1일 - 10일) #5: 로마 여행, 어떻게 할 것인가

iulius 2014. 2. 28. 05:17

사람마다 여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 경우에는 '경치'와 '연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는 좋은 경치를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자연경관이든 도시의 야경이든 멋진 경치를 마주하면 거기에 푹 빠져서 잠시 다른 고민을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아마 많은 다른 사람들도 좋은 경치를 보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상'은 여행지에서 마주친 무엇인가로부터 그것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예전 모습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유적지와 같은 역사적 장소나 물건이 그 대상이 되는데, 어떤 역사적 사실과 관련이 있는가는 완전히 제 주관에 달려 있습니다. 다들 아는 유명한 것일수도 있고, 몇 명 알지 못하는 정말 사소한 것일수도 있지요.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는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처형장소에서 한참을 못 떠나기도 했습니다. 비록 누구도 찾아오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지만 저에게는 의미 있는 장소였지요.


'연상'이 여행의 중요한 요소가 되면, 얼마나 아느냐에 따라 여행의 내용이 달라집니다. 특히 여행지가 현재가 아닌 과거로 인해 유명한 곳이라면 그 정도가 더욱 심할 것입니다. 로마와 같은 곳이라면 말이지요. 그래서, 사실 로마로 오기 전에 좀 더 로마를 공부하고 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좀 더 많이 알고 오지 못했던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에 비해, 많은 사람들의 큰 관심사이지만 저에게는 그다지 관심 없는 분야가 바로 '음식'입니다. '여기까지 와서 이건 먹고 가야지'라는 생각은 저와는 거의 관련이 없습니다. 이탈리아까지 왔어도 파스타든 젤라또든 별 관심은 없습니다. 하긴 젤라또에는 관심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더운 날씨를 이기기 위한 아이스크림의 한 종류로써 관심을 갖는 것이지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음식이 맛이 없어도 상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탈리아까지 와서 맥도날드를 먹는 것은 상관 없어도 그 햄버거가 맛이 없는 것은 싫습니다.


어쨌든 간에, 베네치아 광장 앞 Via del Corso (코르소 거리)에 있던 파스타집은 그런 제 성향에도 불구하고 조금 아쉬운 감이 있습니다. 물론 음식에 특별히 구애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탈리아 파스타의 맛은 어떨지 호기심이 있었는데 특별히 서울에서 먹던 것과 다른 점은 잘 모르겠더군요. '혹시 중국에서 먹었던 짜장면처럼 한국의 스파게티와는 다르지 않을까'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생각도 했었는데 조금 더 느끼한 느낌을 제외하면 별반 차이점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원래 음식에 대한 도전정신은 없는지라 아주 평범하고 일반적인 토마토 소스의 스파게티를 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먹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파스타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은 그저 아쉬운 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내 음식점에서의 첫 식사 시간은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아침의 사태로 인해 꼬여버린 여행 일정을 재조정하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이번 여행은 10일로 계획되어 있고 그 중 절반인 5일을 로마에서 머물 예정이지만, 실제로는 5일 내내 로마를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첫 날인 어제의 대부분은 비행기에서 보냈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곯아 떨어졌지요. 내일은 바티칸을 보기로 되어 있습니다. 아마 하루종일 투어를 하고 나면 시차도 있고 해서 다른 무언가를 하기는 힘들 것 같구요. 마지막 이틀은 로마에서 피렌체로 떠나는 날과 베네치아에서 로마로 돌아와 출국하는 날입니다. 일정을 조정하면 로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낼 수 있겠지만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오늘과 글피 단 이틀이 로마를 온전히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원래는 글피에 로마 근교의 다른 곳을 가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 온전히 하루종일 로마를 볼 수 있는 날은 겨우 오늘 하루 뿐입니다. 글피에는 마음 같아서는 폼페이나 카프리 섬을 가 보고 싶은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까운 다른 후보지로는 티볼리나 오스티아가 있지만 어쩌면 차라리 그냥 로마를 하루 더 구경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의외로 로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10일이면 사람들이 보통 유럽 한 나라를 여행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라고 하는 데다가, 그것도 겨우 도시 세 군데만 들르는 일정을 짰는데도 결국은 로마 하나를 제대로 보지도 못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당황스럽긴 했습니다.


서울에서도 생각했던 것이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서울에 살면서도 아직 안 가본 곳이 수두룩할테니 사실 5일이든 10일이든 머물렀다고 해서 로마를 다 본다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래서 서울을 떠나오기 전에 두 가지 정도의 우선순위를 정해두었습니다. 첫째는 기독교 유적지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일부러 찾아가는 곳은 바티칸 하나로 끝내기로 했습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공화정 로마와 로마 제국의 유적지가 높은 우선순위를 갖는 것이지요. 둘째는 가급적이면 걸어서 이동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전체가 사실상 유적이나 다름 없으니 돌아다니다보면 얻어 걸리는 관광지도 여럿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정해진 목적지를 최대한 줄이되 그 곳만 찍어서 보는 '점 여행'이 아니라 목적지와 목적지 사이를 이동하면서도 관광을 하는 '선 여행'을 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이러한 의도에 따라 미리 어느 정도 정해 온 목적지는 이랬습니다.


<지역 또는 구역>


1. 로마의 일곱 언덕 - 최초로 로마에 사람이 모여 살았다고 하는 언덕입니다. 특히 이 중에서도 신들의 거처로 사용되었고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입 당시 로마인이 7개월 넘게 농성하였던 카피톨리노 언덕과 공화정 때는 부유층이 모여 살았고 제정 때는 황궁이 자리잡고 있던 팔라티노 언덕은 가 보고 싶었습니다.


2. 포로 로마노(Forum Romanum) - 각 언덕 사이의 낮은 습지대를 메워 만든 로마 시민의 정치, 경제, 사회적 중심지였습니다.


3. 아피아 가도(Via Appia) - 재무관이었던 클라우디우스 아피우스가 기원전 312년에 착공한 로마 최초의 가도로 처음에는 로마에서 카푸아까지를 연결하는 길이었고 후에 브린디시까지 연장되었습니다. 역사상 최초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인위적으로 조성되었으며 가도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4. 황제들의 포룸의 거리(Via dei Fori Imperiali) -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베스파시아누스, 트라야누스 등의 로마 황제가 기부한 수많은 포룸들이 자리잡고 있던 곳에 무솔리니가 군대사열용으로 낸 직선도로입니다. 베네치아 광장과 콜로세움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정작 황제들의 포룸은 두 동강 나 버렸습니다.


5. 수부라(Subura)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태어난 곳으로 평민층이 밀집하여 살던 곳입니다.


6. 테베레 강 - 로마를 가로질러 흐르는 강입니다.


< 유적지 >


7. 플라비우스 원형극장(Amphitheatrum  Flavium) -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아들인 티투스 황제 대에 완성된 원형 경기장입니다. 이들의 가문이름을 따서 정식 명칭은 플라비우스 원형극장이지만 콜로세움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정원(Domus Aurea)에 있던 인공호수를 메운 자리에 건설되었으며 그 이름은 근처에 있던 네로 황제의 거상(Colossus Neronis)에서 그 이름이 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8. 판테온(Pantheon) - 원래는 아우구스투스의 친구이자 사위이자 가장 큰 협력자였던 아그리파에 의해 지어진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었습니다. 최초의 판테온은 대화재 때 소실되었으며 후대에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재건축하였습니다. 기둥이 하나도 없는 직경 43m의 구체 형태의 내부가 매우 유명합니다.


9. 아우구스투스 영묘(Mausoleum Augusti) -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무덤입니다.


10. 도미티아누스 경기장(Stadium Domitiani) - 플라비우스 왕조의 세 번째 황제인 도미티아누스가 불타버린 플라미니우스 경기장을 대체하여 착공한 서민 전용 경기장입니다. 도미티아누스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둘째 아들로서 형인 티투스 황제가 재위 2년 만에 급서하자 황제가 되었습니다. 평범한 무인으로 살면서 자신이 황제가 될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버지나 형과는 달리 이미 10대에 황위계승권을 얻으면서 황제로서의 권위와 권한에 대한 자각이 강했다고 합니다. 도미티아누스는 게르마니아 방벽(Limes Germanicus)을 세워 취약한 라인강 상류-도나우강 상류의 국경 방어 능력을 제고하고, 칼레도니아를 공격하고 브리타니아의 속주화를 촉진하는 등 군사적 측면에서 많은 성과를 올렸으나 원로원과의 갈등으로 인하여 그가 암살당한 이후에는 기록말살형(Dimnatio Memoriae)에 처해 졌습니다. 평민들은 도미티아누스의 경기장 건설을 고맙게 여겨 원로원 결의에도 불구하고 경기장의 이름을 버리지 않아 후대에도 도미티아누스 경기장으로 남았습니다. 이와 반대로 도미티아누스가 착공한 포룸은 후대 황제의 이름을 따서 네르바 포룸이 되었지요. 도미티아누스 경기장 자리에는 현재 나보나 광장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11. 폼페이우스 극장(Theatrum Pompeii) -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동지이자 정적이었던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가 세운 상설극장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곳입니다.


12. 티투스 개선문(Arco di Tito) - 티투스의 유대 반란 토벌을 축하하기 위하여 그 사후에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지은 개선문으로 콜로세움에서 포로 로마노로 넘어가는 언덕에 세워져 있습니다.


13. 하드리아누스 영묘(Mausoleum Hadriani) - 오현제 시대의 세 번째 황제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무덤입니다. 후대에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성채를 개축하였으며 6세기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흑사병을 진압하는 천사의 환영을 본 것을 기념하여 성의 지붕에 대천사 미카엘의 거대한 석상을 세웠습니다. 바티칸 시국과 비밀통로로 연결되어 있으며 현재는 천사의 성(Castel Sant' Angelo)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14. 키르쿠스 막시무스(Circus Maximus) - 대 경기장이라는 뜻의 전차 경기장입니다. 팔라티노 언덕 서남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25만 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그야말로 거대한 경기장이었습니다.


이를 고대 로마 지도에 표시해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물론 로마 시내 어디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관광지도에서도 저 위치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지도만 봐도 눈치챌 수 있듯이 오늘 아침에 가려고 했던 콜로세움(7번)을 못 가고 퍼레이드로 인해 황제들의 포룸의 거리(4번)도 우회한 결과, 덤으로 절반에 가까운 목적지를 등 뒤에 두고 걸어오게 되었습니다. 퍼레이드도 끝났을테니 다시 돌아가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죠. 하지만 눈 앞에도 아직 많은 목적지가 남아 있었고 콜로세움은 숙소와도 가까우니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다시 가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 일정은 그래서 판테온(8번)에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도미티아누스 경기장(10번)을 거쳐 테베레 강(6번)을 건너 하드리아누스 영묘(13번)를 들렀다가, 다시 강을 건너와 아우구스투스 영묘(9번)으로 가는 길을 짰습니다. 그곳에서 북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델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이 있고 그곳에서 지하철을 타면 손쉽게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어제 경험으로는 오후 8시가 되어도 해는 중천에 떠있는 듯 하니, 운이 좋으면 오후 늦게 콜로세움을 들를 수도 있을 것이고 시간이 부족하다 싶어도 키르쿠스 막시무스(14번)를 보기엔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