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별 되기/짧은 생각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에 대하여

iulius 2009. 4. 9. 09:51

작전통제권은 군대의 전술적 이동, 작전의 입안, 수행 등 전략, 전술적인 통제와 관련된 권한을 의미합니다. 1950년 7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이 군지휘권을 맥아더에게 '현 전쟁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 동안'에 한하여 위임한 이후로 국제연합군 사령관이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을 행사해 왔습니다. 1978년에 한미연합사령부가 설치되면서 국제연합군 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에게 이 권한을 다시 위임했는데, 실질적으로 국제연합군 사령관과 한미연합사령관은 동일인입니다. (버웰 벨 미육군대장) 앞서 말한듯이 이 위임관계는 어디까지나 '현 전쟁 상태가 지속되는 기간'에 한정되기 때문에 요즘 나도는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하게 된다면 사실 그냥 바로 돌려받아야 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죠.

현재 아직 종전되지는 않았지만 휴전 상태에 있기 때문에 전작권을 평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통제권으로 나누어 1994년에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에 환수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5.16쿠데타나 12.12쿠데타,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쿠데타 세력이 군대를 동원한 것은 모두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는 작전통제권을 위반한 행위입니다. 박정희는 데모를 경찰력만으로 진압하기는 힘들고 그렇다고 작전권 때문에 한국군을 동원할 수 없어서 전투경찰 제도를 만들기도 했죠.

전작권환수와 주권을 결부시키는 행위는 사실 이론적으로 틀린 점은 없습니다. 1945년 UN이 창설되었을 때 UN의 가장 기본적인 세계질서에 대한 가정은 '주권국가'론입니다. 주권국가론이란, 세계는 주권을 가지는 각 집단(주권국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권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 내에서 주권국가 그 자신이 가장 높은 권위를 갖고, 각 국가의 주권은 모두 동일한 권위를 가져 서로 간섭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는 이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즉, 국내에서는 국가가 주권을 행사함으로써 외국의 간섭을 막고, 국외에서는 각 국가의 주권을 동등하게 인정함으로써 어떠한 것도 독립국가의 주권 위에 존재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세계질서의 출발점이었죠.(이것도 2003년에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사실상 무너지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긴 합니다.)

주권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주권입니다. 주권이 미치는 공간이 영토, 주권이 미치는 대상이 국민이죠. 이 때 이 주권을 대내적 혹은 대외적으로 완벽히 독립적으로 행사 가능하도록 보장하는 힘이 군대입니다. A, B, C 세 나라가 있다고 가정해 보죠. 주권국가론에 따르면 A국이 B국을 공격한 경우 C국이 여기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C와 B가 이러한 사태를 가정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을 때 뿐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 A국과 B국의 전쟁은 C국에게는 다른 나라의 주권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개입 권한이 없죠. 그렇다면 B국이 A국을 막기 위해서는 B국에는 A국을 막을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한데 이 능력이 곧 국방력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어떤 국가가 주권을 완벽히 독립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가의 측정기준은 결국 그 나라의 국방력이 어떤가와 관련이 된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한국의 경우 주권 행사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현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아니다의 여부를 떠나서)

하지만 작전통제권 환수는 완전한 주권의 확립이라는 이론적인 내용을 떠나 현실을 들여다 보았을 때 과연 지금 시점이 작통권을 환수하기에 적절한 시점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 적정하다고 생각하면 작전권 환수라고 할 것이고 아직 이르다고 생각하면 작전권 조기환수라고 하겠죠.

작전통제권 조기환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북한의 위협을 그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에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반대 의견이 많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작전통제권의 환수란 방위력 자체와는 무관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북한의 침공 시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해 주는 것은 작전통제권 따위의 개념이 아니라 1953년에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입니다. 한국과 미국은 이 조약에서 상대방이 누군가로부터 공격을 받는 경우 이 공격이 곧 자국에 대한 공격이라고 간주하여 상호 방위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이 침공하게 되면 미군은 최대 72만명 규모의 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합니다.

또한 작전통제권의 이양 자체가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이 작전권 환수가 방위력과는 무관하다는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습니다. 1950년 7월은 그야말로 태어난지 3년도 안 된 한국군이 무참하게 무너지던 상황이었습니다. 특히 1950년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한국군은 단순한 후퇴가 아니라 지휘계통의 마비로 인한 전투불능상황을 경험하였습니다. 2사단과 같은 경우 후방에서 급히 전선으로 향하는 부대가 수송기차가 없어 1개 대대씩 전선에 투입되는 바람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되기도 했고 통신시설 부족으로 인해 후퇴명령이 제때 전달되지 않아 일선부대가 포위되는 등의 위기를 맞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휘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 미군의 지휘 하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하고 전작권을 이양한 거죠.

지금의 우리가 미군이 없으면 작전통제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군대인가 라고 물어본다면 저는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정보능력의 부족은 인정합니다만 미군이 없으면 방위력에 큰 타격은 있어도 미군이 있다면 굳이 작전권을 넘길 필요 없어도 그냥 협조체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지장이 없진 않겠죠. 어느 정도 지장은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정도 효율성을 높이자고 주권과 밀접한 전작권을 외국에게 맡긴다는 건 쥐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거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6.25 때 한국이 그토록 휴전 반대를 주장했음에도 휴전이 성립한 건 미국이 더 이상 전쟁 수행하기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국익에 관한 결정이 외국의 국익에 따라 결정될 수 있기 때문에 주권으로서의 전작권 환수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다만,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전작권 환수가 너무 주권과 연관됨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미국을 자극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전작권 환수는 사실 독립국가가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기본권으로 한국이 전작권을 다시 행사하는 것은 흠을 잡을 곳이 전혀 없는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을 한쪽에서는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다른 쪽에서는 그 반대를 반박한다고 주권을 들먹여 무슨 지금까지는 미국의 식민지였던양 분란을 키운다면 한국방위의 가장 중요한 초석인 한미동맹이 흔들릴 위험도 있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전작권 환수라는 시도 자체가 한미동맹을 흔들고 있다고 말합니다만, 그런 일은 없습니다. 걸프전쟁 때 사우디는 미군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대가로 동등한 명령권의 행사를 요구했습니다. 미국은 이 요구를 받아들여 걸프전쟁에서 다국적군 사령관이었던 노먼 슈워츠코프와 아랍합동군 사령관이었던 칼레드 빈 술탄에게 동등한 지휘권을 인정하는 수평적 지휘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언제나 미국이 모든 걸 통제하고 다른 나라는 거기에 따라야만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한 예를 보여드리는 겁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한국군의 작전을 통제하는 것은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가 아닙니다. 미국 입장에서 작전권의 환수가 한미동맹에 부정적이라고 판단해야 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이제 여기에서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것이 2009년에 작전권을 완전히 돌려주겠다는 것이고 한국이 주장하는 것이 2012년에야 받을 준비가 될 것 같다는 겁니다. 한국군의 독자적인 방어작전 수행능력이 궤도에 오르는 2012년까지 미루려는 것이 한국측 입장이고 될 수 있으면 빨리 주려는 것이 미국측 입장인데 왜 한국 신문들이 한국 정부한테 작전권 조기환수를 반대하는 지는 잘 모르겠네요. 작전권 환수 정 반대하고 싶으면 미국 정부한테 하는 게 더 효과적이겠죠. 개인적으로는 작전권 환수 반대란 지난 독재 시절에 국가에 의해 세뇌된 대북 공포증의 발로가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원문은 2007년 1월 1일 네이버 지식in의 질문에 대해 올린 답글이다. 저 때가 아마... 주권국가론을 처음 듣고 '오! 이게 바로 국제정치의 기본 베이스였어'라고 생각했던 때인 것 같은데... 시험 두 달 앞두고 여유 참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