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anic; 타이타닉, 탄생에서 발견까지 "3편 - 처녀항해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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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명보트 ==
영화에서도 로즈가 앤드류에게 구명보트의 숫자가 적은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오죠. 실제로 타이타닉의 구명보트는 승객을 태우기에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 승선인원이 약 2,200명이었는데 반해 구명보트 20척의 정원은 1,17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나마 처녀항해라서 3,500명의 정원을 모두 태우지 않은게 다행이었을 따름이죠. 빙산과 충돌한 직후의 점검에서 타이타닉이 침몰할 것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졌습니다. 침몰까지 남은 시간은 기껏해야 두 시간 남짓했죠. 배가 침몰한다면 천 명 이상의 사람들이 얼음장같은 바다에서 구조를 기다려야 하는 운명에 놓였습니다.
최초로 타이타닉을 떠난 구명보트는 제7호 구명보트였습니다. 충돌 후 48분이 지난 15일 오전 0시 27분에 28명의 사람들을 태우고 북대서양에 내려졌죠. 보트의 정원이 65명이었으니, 반도 채 태우지 않은 숫자였습니다. 영화를 보면 앤드류가 2등 항해사 찰스 라이톨러에게 "지금 탄 사람의 세 배는 태울 수 있다"며 보트에 사람들을 더 태우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죠. 실제로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이타닉이 가라앉던 순간에 보트에 타고 있던 사람의 수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720명을 넘지 않습니다. 정원의 60%를 겨우 넘는 탑승률이죠. 결국에 보트를 타지 못한 1,500명은 얼음바다에 남겨졌습니다.
구명보트와 관련하여서 한 가지 더 영화로부터 그 당시로 다가갈 수 있는 장면은 보트 갑판에 대한 1등 선실과 3등 선실의 접근성 차이입니다. 1등 선실 승객들은 계단만 올라오면 바로 보트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던 반면에 3등 선실 승객들은 갑판에서 멀리 떨어진 아래층에서 길을 찾아 나오기 어려웠죠. 게다가 3등 선실과 다른 구획을 구분짓기 위해 출입이 통제된 문도 많았습니다. 3등 선실 승객들은 복잡한 탈출로와 잠겨진 문, 두 벽을 넘어서야 갑판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3등 선실 승객들이 나올 수 없도록 문을 잠근 것은 원래의 탈출계획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구명보트는 보트갑판에서 승객 일부를 태운 후 하선하는 도중에 F-G 갑판의 갱웨이(탄수차와 기관사실 사이의 부분)를 열어 3등 선실의 여자와 어린이들을 태우기로 되어 있었죠. 그러나 F-G 갑판과 보트 갑판 사이에 원활한 지시와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구명보트를 통한 탈출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었지 않았기 때문에 구명보트는 중간에 멈추지 않고 그냥 바다에 내려졌습니다.
그 결과 1등 선실이나 2등 선실 승객에 비해 3등 선실 승객의 희생률이 매우 높아졌는데, 사고 후의 조사를 통해 추정한 자료를 보면 3등 선실 승객의 희생률은 1등 선실(39.5%)이나 2등 선실(56.2%)에 비해 크게 높은 75.5%에 달합니다. 특히, 1등 선실의 어린이 29명 중에서는 한 명만이 희생되었는 반면에 3등 선실의 어린이 76명 중에서는 53명이 희생되었습니다. 그나마도 1등 선실의 유일한 어린이 희생자는 보트에 자리가 없어서 못 탄 것이 아니라 엄마와 떨어지지 않겠다고 매달려서 타이타닉에 남았던 네살박이 로렌 앨리슨(Lorraine Allison)이었죠.
아무튼, 빙산과 충돌한지 1시간 35분이 지나 15일 오전 1시 15분이 되면서부터는 타이타닉의 침몰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구명보트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죠. 0시 55분에 하선한 제6호 구명보트와 1시 10분에 하선한 제8호 구명보트에는 28명이 탔지만, 1시 20분에 하선한 제9호 구명보트에는 그 두 배인 56명이 탔습니다. 이제 보트갑판은 공황상태에 빠졌죠. 1시 25분에는 제11호 구명보트가 70명을 태우고 하선했고, 1시 35분에는 제13호 구명보트와 제15호 구명보트가 거의 동시에 내려졌습니다. 제13호 구명보트와 제15호 구명보트는 같은 위치에 연달아 내려진 탓에 먼저 내려진 제13호 구명보트 위를 제15호 구명보트가 덥치는 형태가 되었죠. 제13호 구명보트의 승무원들은 제15호 구명보트에 깔리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로프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비슷한 시간대에 좌현에서는 제14호 구명보트가 하선하고 있었습니다. 제14호 구명보트의 책임자는 5등 항해사 해럴드 로우였는데, 그는 보트 갑판에서 보트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바다쪽으로 총을 발사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보면 바로 위의 사진 장면 뒤에 해럴드 로우가 총을 발사하는 장면이 나오죠. 영화가 타이타닉의 침몰 순간을 시간적으로도 잘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토마스 바일 신부(Father Thomas Byles)와 마가렛 몰리 브라운(Margaret "Molly" Brown)이 사람들을 보트에 탈 수 있도록 도왔다는 증언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몰리는 제6호 구명보트에 올라 결국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바일 신부는 끝까지 탑승을 거부하고 3등 선실 승객들에게 고해성사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타이타닉이 크게 기울어졌을 때 한 손으로 탁자를 붙잡고 다른 손은 그 앞에 몰려든 승객들에게 내밀며 계속 기도를 외우고 있는 바일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이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먼저 탑승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보트에 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적었던 보트의 숫자와 충돌 직후에 충분히 사람을 태우지 않고 보트를 내렸던 것이 어쩌면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타이타닉이 마지막으로 떠나 보낸 조립식보트 D호까지, 내려진 구명보트에 빈 자리는 450석이 넘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보트를 내렸기 때문일까요. 다른 얘기에 따르면 스미스 선장은 보트에 빈 자리가 있으면 나중에 보트가 돌아와서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보트는 단 한 척이었죠.
== CQDCQDDEMGYMGYMGY ==
빙산에 부딪치기 조금 전이었던 14일 오후 11시 경, 타이타닉의 무전실에 빙산 경고가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근처를 지나던 캘리포니안호(SS Californian)로부터였지요. 그러나 무전실의 잭 필립스(John George "Jack" Philips)와 해럴드 브라이드(Harold Bride)는 그 날 일찍부터 고장난 무선장비를 수리하느라 지친 상태였습니다. 무선장비를 수리하고 나서는 1,300km 떨어진 뉴펀들랜드의 케이프 레이스(Cape Race)에서 들어오는 승객들의 개인 전신문을 수신해야 했지요. 잭 필립스는 짜증난 목소리로 면박을 주었습니다.
"지금 바쁘니까 끼어들지 마쇼! (Shut up! Shut up! I'm busy! I am working Cape Race!)"
타이타닉의 진로에 거대한 빙산이 있음을 알려주려고 했던 캘리포니안의 무전사 시릴 에반스(Cyril Evans)는 면박을 받은 데다가 조금 기다려보았지만 타이타닉으로 아무런 반응이 없자 11시 30분에 무선기를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치기 10분 전, 그리고 타이타닉으로부터 최초의 구조요청신호가 발송되기 35분 전이었죠.
빙산과 충돌한지 25분이 지난 15일 0시 5분, 타이타닉을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스미스 선장은 무전실에 구조요청신호를 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잭 필립스는 역사상 가장 유명해진 전송문을 타전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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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Q D C Q D D E M G Y M G Y M G Y
(MGY는 타이타닉의 호출부호, DE는 'this is' 또는 'from'의 무선용어입니다. CQD는 당시의 구조요청신호로 위의 전송문은 타이타닉으로부터의 구조요청이라는 뜻입니다.)
타이타닉의 구조요청신호를 받은 배들은 여러 척이었습니다. 타이타닉의 자매함인 올림픽을 비롯하여 마운트템플호(S.S. Mount Temple)와 프랑크푸르트호(Frankfurt), 그리고 카르파티아호(RMS Carpathia)도 타이타닉의 구조요청신호를 받았죠. 타이타닉의 구조요청신호는 육지에서도 수신되었습니다. 케이프 레이스의 무선실과 뉴욕시의 와나메이커 백화점 꼭대기에 있는 마르코스 무선실에서도 타이타닉의 신호가 잡혔습니다. 그러나 모두 너무 멀리 있었죠.
육지는 그렇다치고, 올림픽은 500해리(930km) 밖에 있어 도저히 올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49해리(91km) 밖에 있던 마운트템플과 58해리(107km) 밖에 있던 카르파티아는 구조신호를 받자마자 전속력으로 배를 돌려 타이타닉을 향해 왔지만, 두 배 모두 타이타닉까지 오는 데에는 4시간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하기까지는 겨우 두 시간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그들이 타이타닉의 승객과 승무원을 구조하러 오기에는 너무 멀었습니다.
필립스와 브라이드는 기울어가는 무선실에서 계속해서 구조요청신호를 타전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널리 쓰이던 구조요청신호 CQD는 마르코니가 만든 신호로 무선통신의 기본신호인 CQ에 구조요청(distress)의 앞글자 D를 딴 것이었죠. CQD가 Come quick, danger의 약자라는 설도 있지만 사실과는 다르죠. CQD는 주로 영국 선적의 선박에서 사용했는데, 각국 선박의 구조요청신호를 통일하기 위해 1905년에 SOS라는 구조신호가 채택되었으나 아직 널리 사용되지는 않던 때였습니다. SOS역시 가장 식별하기 쉬운 모르스부호의 조합일 뿐 Save our ship의 약자라는 설은 나중의 해석입니다. 아무튼, 브라이드는 CQD를 타전하고 있는 필립스에게 SOS를 타전할 것을 권유했었는데, 이 때 필립스가 타전한 SOS는 타이타닉 참사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이후 1999년까지 국제공통의 조난신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배가 한창 기울어진 오전 2시 5분, 스미스 선장은 타전을 멈추고 탈출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브라이드는 동전을 챙기러 방으로 갔고 잭 필립스는 그 동안 계속 구조요청을 타전했죠. 짐을 챙기고 돌아온 브라이드와 잭 필립스가 무전실을 빠져나와 보트 갑판으로 올라갔을 땐 이미 물이 차 올라왔고 눈 앞의 조립식보트 B호가 뒤집어진 채로 물에 떠 있었습니다. 브라이드와 잭 필립스는 뒤집어진 보트에 매달려 타이타닉을 빠져나왔죠.
== 캘리포니안호(SS Californian) ==
타이타닉 침몰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이름이 캘리포니안입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하기 직전에 빙산 경고를 보낸 그 배였죠. 캘리포니안은 타이타닉이 빙산에 부딪치던 순간 겨우 10~15해리(18~28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전속력으로 항해하면 한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죠. 그러나 타이타닉이 구조요청신호를 발신하기 35분 전에 이미 캘리포니안의 무선기는 꺼져 있었습니다.
타이타닉의 브릿지에서는 우현 멀리 어떤 배의 불빛이 보였다고 합니다. 타이타닉은 그 배와 연락하기 위해 무선신호를 발송하기도 하고 15분 간격으로 구조요청로켓을 쏘기도 했지만 그 배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4등 항해사 박스홀과 조타수 조지 로(Geroge Rowe)는 램프를 깜빡여 신호를 보내보기도 했지만 끝내 그 배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4시간 후에 현장에 도착했던 마운트템플과 카르파티아는 모두 식별되지 않는 증기선 한 척을 보았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들은 그 증기선에 마스트 2개와 굴뚝 하나가 있었다고 했죠. 캘리포니안의 마스트는 4개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들이 본 배가 캘리포니안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안 외에 그 당시 그 위치에 있던 다른 배가 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캘리포니안도 오른쪽 수평선 멀리 배 한 척이 보였다고 합니다. 14일 오후 11시, 2등 항해사 허버트 스톤(Herbert Stone)과 견습선원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이 이 사실을 선장인 스탠리 로드(Stanley Lord)에게 보고했죠. 로드 선장은 무선사 에반스에게 근처에 다른 배가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에반스가 근처에 있는 배는 타이타닉뿐이라고 대답하였지만 로드 선장은 멀리 보이는 배가 타이타닉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로드 선장은 빙산 때문에 야간 항해를 포기하기로 결정하고 일단 타이타닉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줄 것을 지시했습니다. 에반스는 타이타닉에 빙산 경고를 보냈고, 앞서 말한 것처럼 잭 필립스로부터 바쁘니까 끼어들지 말라는 면박을 받았죠.
오후 11시 30분, 로드 선장은 3등 항해사 그로브스에게 램프로 신호를 전달해 보라고 지시했지만 수평선 멀리 보이는 그 배는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오전 0시 45분, 스톤은 그 배에서 하얀 로켓이 연거푸 발사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캘리포니안의 누구도 그것이 어떤 신호인지 판단하지 못했지요. 2시쯤 그 배는 수평선 멀리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 배가 타이타닉이었다면 그 시간에 타이타닉은 수평선 멀리 사라진 게 아니라 수면 아래로 사라진 것이겠지만요) 로드 선장은 잘 지켜보고 상황이 발생하면 깨울 것을 지시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그 배가 사라진 방향을 지켜보던 스톤과 깁슨은 오전 3시 30분쯤 남쪽에서 발사된 로켓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로켓을 발사한 배를 보지는 못했고 이번에도 그 로켓이 무슨 신호인지는 판단할 수 없었죠. 캘리포니안은 날이 밝을 때까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끝내 알지 못했지만, 오전 3시 30분에 스톤과 깁슨이 본 로켓은 남동쪽에서 전속력으로 달려오고 있던 카르파티아가 타이타닉의 생존자들에게 조금만 더 버티라고, 곧 도착한다고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캘리포니안이 타이타닉 참사를 알게 된 것은 오전 8시 30분이 되어서였습니다. 타이타닉의 마지막 생존자들을 모두 태운 직후였던 카르파티아는 급히 뉴욕으로 떠나면서 캘리포니안에게 다른 생존자를 수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캘리포니안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부서진 잔해들과 비어있는 구명보트 뿐이었죠.
== 최후의 순간 ==
오전 2시 5분, 빙산과 충돌한 지 2시간 20분이 지나자 선수는 완전히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바닷물이 보트 갑판 위로 차오르기 시작했고 타이타닉의 거대한 프로펠러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굴뚝이 앞으로 넘어지며 수 많은 사람들을 덮쳤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보트에 올라타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쳤고, 배에 남은 사람들은 아직 침수되지 않은 후미에 몰려들었죠. 이제 1등 선실의 대형 층계(Grand Staircase)에도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35도 정도 기울어져 있었죠.
오전 2시 17분경, 타이타닉의 전기 시스템이 나갔습니다. 어두운 밤에 비명소리만이 가득했죠. 곧이어 두 번째 굴뚝이 쓰러졌습니다.
타이타닉은 원래 12도 정도 기울어진 선체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45도 이상 기울어진 선체를 버텨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못했죠. 오전 2시 18분경, 물 위로 들어올려진 타이타닉의 선미 2만 3천톤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선체가 반으로 부러졌습니다.
분리된 선수부분은 완전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완전히 분리되지 않은 선수부분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음에 따라 후미가 완전히 들어올려져 직각으로 세워졌죠. 잠깐 동안 물 위에 떠 있는 듯 하던 후미는 선수를 따라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오전 2시 20분, 빙산과 부딪친 지 2시간 40분만에 타이타닉은 완전히 가라앉았습니다.
== 생존자 구조 ==
타이타닉이 가라앉았을 때 바다에는 보트에 타지 못한 1,500여 명의 사람들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영하 2도의 차가운 바닷물에서 필사적으로 헤엄쳤죠. 그렇지만 그들의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구명보트는 생존자를 구하러 나서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보트 위로 기어오르다가 보트가 뒤집히거나 너무 많은 사람들을 태웠다가 침몰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영화에서 나온대로 생존자를 구조하러 돌아온 보트는 단 한 척이었습니다. 그마저도 타이타닉이 완전히 침몰하고 한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을 때였습니다.
침몰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제14호 구명보트였습니다. 구조지휘는 5등 항해사 해럴드 로우가 맡았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습니다. 영하의 바다에서 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물에 빠진 1,500명 중 제14호 구명보트가 구조한 사람은 단 네 명. 돌아오지 않은 제4호 구명보트가 근처까지 헤엄쳐 온 사람들을 구조한 숫자를 합해도 단 열 명만이 차가운 바닷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타이타닉과 함께 얼음바다에 남겨졌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려온 카르파티아가 참사 현장에 도착한 것은 오전 4시 10분이었습니다. 마운트템플은 도중에 유빙군에 가로막혀 도착하지 못했죠. 타이타닉이 침몰한 지 거의 두 시간이 다 되어서였고 구명보트에 탄 사람들 외에 생존자가 없는 것은 자명했습니다. 카르파티아는 거의 네 시간 동안 타이타닉의 생존자를 구조했습니다. 다행히 카르파티아의 객실은 반 넘게 비어 있어서 생존자들을 수용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죠. 뒤집어진 채로 떠다니던 조립식보트 B호의 생존자도 구조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원래 30명 넘는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지만 구조된 사람은 27명 뿐이었습니다. 조립식보트 B호에 매달려 있던 사람 중에는 2등 항해사 라이톨러와 무전사 잭 필립스, 무전사 보조 브라이드도 있었는데 잭 필립스는 카르파티아에 구조되기 전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오전 8시 50분, 마지막 생존자까지 구조한 카르파티아는 간단한 추모예배를 올린 후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참사에서 살아남은 710명의 생존자와 세 마리의 애완견을 태우고. (생존자 중 다섯 명은 뉴욕으로 향하던 도중 숨을 거두었습니다)
== Titanic ==
2009/04/23 - Titanic; 조각모음
2009/04/30 - Titanic; 타이타닉, 탄생에서 발견까지 "1편 - 탄생"
2009/05/03 - Titanic; 타이타닉, 탄생에서 발견까지 "2편 - 처녀항해 1부"
2009/05/20 - Titanic; 타이타닉, 탄생에서 발견까지 "3편 - 처녀항해 2부"(You're here)
2009/07/08 - Titanic; 타이타닉, 탄생에서 발견까지 "4편 -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