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오직 영어만 잘하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묘한 분위기가 생겨났다. 머리 좋은 사람이 영어도 잘하겠지만, 영어 잘한다고 모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닐 텐데도 말이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오래 살다 오면 저절로 머리가 좋아지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한 마디로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우리 사회의 영어 광풍이 해외 언론의 뉴스거리가 된 지 이미 오래다. 미국 경제학 책에는 영어 발음 좋게 한다고 혀 수술까지 받도록 하는 한국 부모의 예도 등장했다. 얼마나 이상한 일로 비쳤기에 경제학 책의 예로 썼는지 생각해보면 입맛이 쓰다. 그런 턱없는 짓을 서슴지 않는 우리가 이상할 뿐 아니라 우습기까지 했을 것이 분명하다. "왜 우리가 영어를 잘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 의문에 대..
그 다음 날에는 원앙금침을 넣을 농을 만들려고 안채의 오동나무를 베었다. 오동나무를 베려고 초노 한 명이 갔을 때 서운이는 오동나무에 올라가 내려오려 하지 않고 있었다. 마님께서 짐짓 서운이 신경쓰지 말고 나무를 베라고 했을 때야 서운이가 나무 위에서 입을 열었다. "전 시집 안 가요. 혼담 도로 물리라고 해요. 전 어머니처럼 살기 싫어요." 마님 얼굴에 뭐라 설명하기 힘든 표정이 지나갔다. 하지만 말투는 흔들림 없이 엄했다.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네가 어린애더냐? 아랫것들 있는 데서 부끄럽지 않느냐?" "저 진짜로 시집 안 가요. 어머니처럼 첩한테까지 부덕 보이는 척해야 하고 마음대로 외가도 못 가고 종일 집안 관리하고 손님 맞이하고 제사음식 만들면서 밤에도 책 한 번 마음대로 못 읽고 바느질하면서..
여름 내내 나는 산이나 행랑채에서 천자문을 익히고 애기씨는 사당에서 사서삼경을 독학하셨다. 그 무렵 사랑채에는 수시로 손님들이 드나드셨다. 애기씨께서는 낮에는 공부하시고 밤에는 마님께 자수며 요리를 배우셨다. 나는 낮에는 산에 가서 나무하고 공부하고 밤이면 바느질하는 어머니 곁에서 말동무를 하며 머릿속으로 낮에 공부한 한자를 떠올렸다. "요새 애기씨 혼담이 오가는 것 같더라. 대감마님이랑 같은 당파에 계신 분 아드님이시라든데. 애기씨보다 몇 살 많으시댔더라?" "어머니, 애기씨는 시집 안 가세요." 그때 그 말이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때의 나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기씨께서는 시집 안 가시고 벼슬 하실 거라고 막연하게 믿고 있었다. "애기씨께서 시집 안 가신다던? 아이..
언문을 깨친 후부터는 언문으로 된 책을 무엇이든 갖다 읽었다. 애기씨 방에 언문책이라고는 계녀서와 소설밖에 없어서 나는 부녀자의 도리를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고 또 읽었다. 내가 부녀자의 도리에 관해 쓴 책들을 읽는 동안 애기씨는 이나 같은 소설책을 읽으셨다. 어떤 때는 책을 밀어두시고 오동나무 위에 올라가 한양 시내를 한참 보시다가 내려오기도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책을 읽느라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내려왔더니 집안이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듯 어수선했다. 안채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여자의 비명소리와 곤장으로 살을 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무서워서 어머니를 찾았더니 어머니는 문 밖에서 애기씨를 품에 안고 다독이고 있었다. 날 돌아보시는 애기씨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주인 눈치 살피고 사는 ..
다음 날 보니 애기씨의 무릎엔 보랏빛 피멍이 들어있었다. 산에서 나무 할 때 꺾어온 각시 붓꽃의 잎을 소꿉놀이하듯 돌로 짓찧어 무릎에 붙여 드리니까 애기씨께서 전날 나무 위에서의 그 얼굴로 나를 보셨다. "이러면 진짜 낫는거야?" "그럼요. 이게 멍든 데 얼마나 좋다구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 너 되게 똑똑하구나." 똑똑하다는 칭찬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았다. 나도 모르게 우쭐해졌다. 애기씨께서 비밀 얘기하듯 얼굴을 내 앞에 바짝 들이대셨다. "너 글자 읽을 줄 알지? 시는 지을 줄 알아?" "네?" 전혀 뜻밖의 질문이었다. "종놈이 어떻게 글자를 알아요. 애기씨, 전 까막눈이에요." "똑똑한 놈이 글자는 왜 몰라? 나무도 잘 타고, 각시붓꽃도 알면서." "종놈은 글자를 배울 일도 없고, 배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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