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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롓날 집안은 시끌벅적했다. 종들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해서 동네 아낙들과 장정들까지 일을 도왔다. 술이 몇 동이씩 들어오고 소와 돼지를 잡았다. 부엌과 마당의 솥에서는 펄펄 김이 올랐다. 떡을 치고 국수를 삶았다. 기름 냄새가 온 집안에 퍼졌다. 색색깔 자투리천을 이어붙인 조각보로 혼수물목을 감쌌다. 여기저기서 뭐가 부족하다느니 뭐를 가져오라느니 소리를 쳤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사람들과 부딪쳤다. 저마다 바쁘게 종종걸음을 쳤다. 다들 정신없이 바쁜 틈을 타 약속장소인 동쪽 담 밑에 가서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서운이가 내 옷을 입고 봇짐을 메고 뛰어 왔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서운이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들켰어."
모든 일이 예상에서 비껴났다. 저녁쯤 와야 할 신랑 일행이 대낮에 마을 어귀에 도착해 버렸고 머슴으로 변장한 서운이가 고개까지 푹 숙이고 다녔는데도 취비 하나가 서운이를 알아 봐 버렸다. 서운이는 은장도로 활옷을 죽 찢고 왔다고 했다. 혼례 때까지 시간도 벌고 혹시나 활옷이 찢긴 게 불길하다 하여 혼례를 취소하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있었다.
서운이가 봇짐을 내게 넘겼다. 아무래도 서운이보다는 빠른 내가 서운이의 손을 잡아 이끌고 북적이는 사람들을 이리저리 헤치며 나갔다. 서운이네 일가친척들까지 속속 도착해서 집안은 더 붐볐고 서운이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도 그만큼 늘어났다. 때마침 신랑 일행이 도착했고 서운이가 없어졌다는 걸 누가 알아차렸는지 그 취비가 고했는지 여기저기서 서운이를 찾기 시작했다. 어디서 서운이 어머님이 서운이를 부르시는 소리와 우리 어머니가 놀라서 "아이구 이런 변이 있나! 누가, 누가 혼례복을 이렇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운이도 나도 멈칫했지만 곧 둘 다 정신을 차리고 대문으로 향했다. 대문에는 서운이 아버님께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계셨다. 그곳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나머지 문들은 모두 닫혔다. 우리는 바늘 하나 꽂을 수 없을 것 같은 인파 속을 미친 듯이 헤집고 들쑤시고 다녔다. 그릇 부딪치는 소리, 서운이를 부르는 소리,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뒤섞였다. 솥뚜껑이 열리고 솥에서 김이 오를 때마다 고깃국 냄새며 잔치국수 국물내가 나고 항아리 뚜껑이 열리면 장냄새며 새큼한 김치 냄새가 났다. 특별한 날이라고 빨아 입은 무명치마며 바지들, 풀을 먹여 서걱이는 비단치마며 두루마기 자락이 다리에 걸렸다. 쪽찐 머리 사이로 산처럼 높고 기세등등한 가체머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서운이와 나는 이심전심으로 사당으로 향했다. 일단 그곳에 숨어 있을 작정이었다. 아무도 부녀자와 머슴이 사당에 갔다고는 상상하지 못 할 터였다.
"애기씨께서 저기 계십니다!"
사당 반대쪽을 향해 소리 지르고선 사람들의 눈이 그쪽을 향한 틈을 타 우리는 잽싸게 담을 넘어 사당에 들어갔다. 그제서야 한숨을 내쉬고 옷매무새를 다듬을 수 있었다. 담 너머에서는 여전히 서운이 찾는 소리며 손님 접대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운이의 손을 잡고 사당 뒷마당의 대숲을 헤쳤다.
"엄마……."
서운이가 소리를 죽여 가며 울었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엄마……. 어릴 때 부르던 대로 불러보자마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이제 다시는 엄마를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나 막막했다. 서운이와 나는 서로의 들먹이는 어깨를 꼭 안았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범이야, 만약에 혹시 이 담에 내가 금의환향하면은, 예전에 너한테 약속했던 이야기도 써 주고, 노비문서에서 네 이름을 지워 줄게."
천출이를 양반 명부에 올리는 것에 비교될 만한 허황된 꿈이었지만 나는 서운이와 손가락을 걸었다.
"너도, 나도 똑똑하니까 너는 충신이 되고 나는 학자가 될 수 있을 거야."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 믿음에라도 의지해야 했다.
피곤했는지 서로 기대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깨 보니 어느덧 저녁때였다. 담 너머에서 서운이를 찾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집안 상황이 어떤지 잠깐 넘어다보고 오자."
아마 그건 운이 없었던 게 아니라 팔자가 사나워서 운명이 그렇게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일 게다. 사당 너머의 동정을 살피려고 나온 순간 파혼을 고하려 사당으로 들어오시던 문중 어른들과 마주친 건. 아무리 나이 드신 분들이라 해도 애 둘이서 어른 여럿을 이길 수는 없었다. 서운이와 나는 어르신들의 체통을 구겨가며 말 그대로 개처럼 질질 사당 밖으로 끌려 나왔다. 어찌나 발버둥을 쳤는지 봇짐에서 패물이 쏟아져 나왔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음흉한 종놈이 순진한 애기씨 꼬셔서 주인댁 재물 빼돌리는 것으로 보이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어디 감히 천한 종놈이 이런 해괴한 짓을……. 내 이놈을 쳐 죽여도 분이 풀리지 않으리라!"
"아버지, 다 소녀가 했습니다. 부인으로 살지 않으려고요!"
"너는 어찌 아직도 철이 덜 들어서 이런 치기어린 행동을 일삼느냐!"
서운이는 안채로 끌려갔고 나는 고방에 갇혔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살아오신 서운이 아버님도 수치심에 붉어진 얼굴을 어쩌지 못하셨다.
"네놈이 문중 어르신들도 다 모이신 날 이런 짓을 한 이유가 무엇이냐!"
"같이 이 집을 떠나서 서운이는 벼슬을 하고 저는 학문을 하려 했습니다."
"이 미친놈이……. 이 놈을 죽을 때까치 쳐라! 복날 개 잡듯이 치란 말이다!"
어떻게 할 틈도 없이 입에 재갈이 물리고 손이 묶이고 몸이 멍석에 둘둘 말렸다. 고방 밖으로 소리가 새 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종놈 하나 죽이고 애기씨는 시집 보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으면 끝날 일이었다. 온몸에 매가 쏟아졌다. 사정없이 내리치는 매를 받아낼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멍석에 머리끝 발끝까지 말려 있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제대로 비명 한 번 지를 수 없었다. 이대로 살점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고 뼈가 부서져 온몸이 매에 흩어져 죽어도 어디 가서 호소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천한 종놈이었다. 나는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의식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깨어나 보니 행랑채였다. 내가 한참 맞고 있을 때 안채 마님께서 달려 오셔서 제발 나를 살려 달라고 눈물로 호소하신 덕에 간신히 행랑채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 후 내리 한 달을 혼수상태였댔다. 눈을 떠 보니 머리맡에 서운이와 내가 보던 책과 열매 달린 오동나무 가지가 놓여 있었다.
내가 혼수상태에 있던 동안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머니는 내 여동생을 순산했다. 파혼은 취소되었다. 서운이는 가체에 눌려 고개 한 번 제대로 못 들고 혼례를 치러야 했다. 꽃가마 지붕에 액막이용으로 호랑이 가죽을 덮고서 시집을 간 서운이는 사흘 만에 죽어서 시집 선산에 묻혔다. 방에 앉아 글을 짓고 있다가 시아버지가 갑자기 들어오시는 바람에 놀라 일어나다가 가체에 목이 부러졌다고 했다. 그 소식을 전해 들으시고 마님께선 안채 마당의 서운이 오동나무 밑동만 한없이 쓰다듬으셨다. 그리고 내게 서운이가 남긴 책과 오동나무가지가 전해졌다. 나는 행랑채 앞마당에 오동나무 열매를 심었다.
종자기가 죽고 나서 백아는 거문고현을 끊고서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서운이가 죽은 후로 다시는 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당선소감>
참 이상한 일이지요. 부정하고 싶었지만 벗어날 수 없었던 제 정체성을 소재로 쓴 이 소설이 제가 원했던 작가라는 정체성을 타인들에게 인정받게 해 주었고, 주인공들의 운명을 절망으로 몰아간 제게 이 수상소식이 그래도 제가 뭐 하나 그나마 잘 하는 게 있을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습니다.
저는 늘 현실에서 도피하여 환상 속에서 행복해지고자 소설을 썼습니다. 그렇게 소설을 쓰면서 느낀 것은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 아무리 무의미하거나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에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것, 그러므로 사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삶과 죽음도 결코 함부로 남의 입에 오르내릴 수는 없습니다.
<청장관전서>의 그 기록을 봤을 때 서운이와 범이가 제게 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열세 살짜리 어린 소녀의 죽음이 사치에 경종을 울리는 가십으로 취급되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이 소설이 서운이와 범이에게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싸움 전국 랭킹 1위였던 한우에게서 이름을 따온 범이도 제 마음에 아릿하게 남은 서운이도 개인은 작고 세상은 너무 클지라도 세상과 부딪치면서, 더 행복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살아나가야 하겠지요.
제게 샤프를 들어 <가체>를 쓸 용기를 주셨던 소설 <리진>의 '강연' 씨, 이 소설의 영감이 된 안동반촌으로의 한국교육사 답사를 함께 간 학우분들, 공부를 한 이후에 달라지는 범이의 삶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게 해 주신 교육사회학 오성철 선생님, 조선시대 여성과 노비, 가체 등에 대해 연구해 주신 학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늘 내 글을 읽어주고 평해주는 혜인아, 고맙다. 소설은 우열이 아니라 취향의 문제라고 믿기에 이 소설을 좋아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 교육학과 04학번 강은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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