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베스파시아누스의 맏아들 티투스는 아버지 휘하에서 유대 전쟁에 참전하고 있을 때부터 유대 공주 베레니케를 사랑하게 되었다. 베레니케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에 유대 왕위에 복귀한 아그리파 1세의 딸이다. 유대 전쟁에서 로마 편에 붙은 아그리파 2세의 누나이기도 하다. 티투스보다는 열두 살이나 나이가 많고, 오리엔트 군주들과 두 번 결혼한 경험도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인 아그리파 1세는 재기가 뛰어나, 로마에서 교육을 받고 있던 청년 시절에는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위험 인물로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데 아버지의 재능은 아들보다 딸이 더 많이 물려받는지도 모른다. 성격이 고분고분하여 로마의 이상적인 동맹자로 여겨지고 있었던 동생과 달리, 누나인 베레니케는 로마인 장관이 유대인을 박해하기라도 하면 엄중한 항의도 서슴지 않을 만큼 자존심이 세고 드센 성격을 갖고 있었다. 지혜가 뛰어났을 뿐 아니라, 넓고 깊은 교양도 갖추고 있었던 모양이다. 초상이 남아 있지 않아서 역사가들의 기술을 믿을 수밖에 없지만, 날씬한 몸매에 행동거지도 우아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
베레니케도 티투스가 바치는 애정을 받아들인 모양이다. 황제의 아들과 유대 공주의 재회는 베스파시아누스를 예방하기 위해 로마를 찾은 아그리파 2세가 누나를 동반한 덕분에 이루어졌다. 티투스는 애인을 황궁에 살게 했다. 베레니케와 사랑에 빠졌을 때부터 딸을 하나 낳은 아내와는 이혼했기 때문에, 이런 일에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독신이었다. 로마인도 유대 여자와 동거하는 것 자체는 문제삼지 않았다. 팔라티노 언덕의 황궁에는 황제 가족만이 아니라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 플라티우스도 살고 있었고, 이집트 장관을 지내다가 유대 전쟁이 끝난 뒤에는 수도 경찰청장에 발탁된 유대인 티베리우스 율리우스 알렉산드로스도 자주 드나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마인들은 이것을 화젯거리로도 삼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클레오파트라에게 그랬듯이, 티투스가 고귀한 신분으로 태어난 유대 여인과 그대로 애인 관계를 유지했다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티투스가 제위계승자가 아니라 일개 행정관이었다면, 유대 여인과 정식으로 결혼해도 로마인은 문제삼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베레니케의 언니는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장관과 결혼했다. 하지만 순박한 티투스는 사랑하는 여인을 애인으로 놓아둘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뒤를 이을 게 분명한 제위계승자였다.
베레니케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베스파시아누스가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대한 대답은 황제 대신 민중이 했다.
그날 경기장 귀빈석에는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만이 아니라 유대 공주 베레니케도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 자리를 가득 메운 관중들은 그들을 향해 맹렬한 반대의 외침소리를 질렀다.
...
티투스는 사랑을 포기했다. 베레니케는 유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9년이 지나 베스파시아누스가 죽고 티투스가 제위에 오른 뒤, 베레니케는 다시 한번 로마를 방문한다. 하지만 황제가 된 뒤에도 티투스는 경기장에서 들은 비난의 합창을 잊지 못했다. 유대 여인은 이번에도 다시 오리엔트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티투스는 사랑을 성취하는 것은 체념했지만, 그래도 베레니케에게 사랑을 바치는 것은 그만두지 않았다. 베레니케와 헤어진 뒤에는 새로운 결혼 상대를 찾지 않았다. 애인조차 두지 않았다.
-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제7권 '악명높은 황제들' 중 -
'다른 별자리 > 책에서 찾아내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 (1) | 2012.01.20 |
---|---|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그라쿠스의 아프리카누스를 위한 변론 (2) | 2009.08.20 |
- Total
- Today
- Yesterday
- 제임스 카메론
- James Cameron
- 대학문학상
- 영어광풍
- IFRS
- Les Miserables
- 항공전
- 서울대학교
- 레 미제라블
- 중일전쟁
- 가체
- Krarow
- 항공전사
- RMS Titanic
- 화이트 스타 선박
- 영화
- 타이타닉
- 처녀항해
- 대학신문
- 이탈리아 여행
- 민족주의
- 소설부문
- Captain Smith
- 新민족주의
- 플라스쵸프 강제수용소
- Schindler's list
- 태평양전쟁
- 크라코프
- 국제회계기준
- 로마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