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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에 근 10년만에 LG 경기에 응원을 다녀왔는데, 2주일 만에 다시 야구장을 찾았습니다. 비록 전날 한화에게 9 대 19로 대패하기는 했지만, 그거야 난타전에서 운이 좀 부족했다고 생각했고 오히려 타격의 물이 올라서 오늘 경기는 왠지 이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구장에 도착한 게 6시 38분, 그러니까 경기에 단 8분 늦게 입장한 것 뿐이었는데 벌써 1회말, 점수는 1:0이었습니다. 부상에서 복귀한 이후 펄펄 날고 있는 박용택이 선두타자 홈런을 때려낸 것이었죠. 막 입장권을 제시하고 들어서던 그 순간 떠나갈 듯한 함성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더군요.

사실 야구장을 자주 찾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아직 LG의 승리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었습니다. 94년도부터 LG팬이었으니 그 잘하던 때에도 어째 운이 없이 갈 때 마다 지길래 팀을 위해 -_-;; 야구장을 찾지 않았죠. 2000년대에 들어서니 굳이 제가 안 가더라도 자꾸 지는 통에 점점 관심이 희미해져 갔으나 재작년부터 다시 LG의 부활을 꿈꾸기 시작했는데요. 작년에는 병원에 입원해 있느라고 야구장에 갈 기회가 없었고, 올해 처음 갔던 경기에서는 삼성한테 1:4로 지는 동안 달랑 안타 하나 보고 돌아왔던지라 사실 겁이 많이 났습니다. 오늘도 무기력하게 지면 어쩌나 하고 말이죠. 저번에 질 때도 1회의 LG 득점 장면이 지난 다음에 들어왔었는데, 설마 오늘도 그 홈런 하나가 끝이면 어쩌지 싶었습니다.

3회초 봉중근이 흔들렸죠. 1회와 2회를 삼자범퇴로 깔끔하게 끝냈는데, 3회 선두타자인 장영석에게 동점 솔로홈런을 맞더니 허준에게 2루타, 강정호에게 안타를 허용해서 무사 주자 1, 3루의 위기상황에 놓였습니다.

                    [장영석의 솔로 홈런으로 1:1 동점이 된 3회초]

              [무사 주자 1, 3루. 타석에는 1번타자 황재균이 들어섰다]

다행히 다음 타자인 황재균은 2루수 땅볼을 쳤고, 먼저 타자주자를 1루에서 아웃시킨 후 1루주자 강정호를 1루와 2루 사이에서 협살하면서 위기 상황을 1실점으로 막아내었죠.

                         [1루 주자 강정호가 협살 당하고 있다]

그리고 위기 뒤의 찬스라고, 작년과 달라진 LG의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2로 역전당한 직후인 3회말, LG의 선두타자는 다시 박용택이었죠. 정말 펄펄 난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최고의 활약을 보이는 박용택, 다시 한 번 중전안타로 역전의 물꼬를 텄습니다. 이대형이 희생번트를 실패하고 물러나긴 했지만 정성훈의 중전안타, 페타지니의 2루 땅볼로 만든 2사 주자 2, 3루의 기회에서 최동수가 오늘의 결승점이 된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습니다.

                    [재역전을 기대하는 1루측 응원석의 LG팬들]

                            [최동수, 2타점 역전 적시타의 순간]

                [역전에 성공하자 1루측 관중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순간이 분기점이었습니다. 봉중근은 4회부터 6회까지 삼진 4개를 잡아내며 매회 삼자범퇴로 처리했고, 기세가 오른 타선은 5회 페타지니와 최동수의 연속 볼넷으로 만든 1사 주자 1, 2루에서 이진영이 이틀 연속 3점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를 결정지었습니다.




[위에서부터 와인드업하는 마일영, 이진영이 홈런을 치는 순간, 담장을 넘어가는 공, 베이스를 도는 이진영]

6회말 공격도 선두타자는 박용택이었는데, 이날 유일한 범타인 투수 앞 땅볼을 기록했습니다. 결과론이지만 만약 이 때 2루타를 쳤다면 박용택은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할 수도 있었기에 아쉬웠죠.

대신 이대형이 좌전 안타를 치고 나간 후 2루 도루까지 성공하면서 5회의 기세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페타지니의 2루타, 최동수의 안타를 묶어서 2점을 추가로 냈습니다. 이제는 확실히 이긴 경기에 대한 축포나 다름 없었죠.

        [바뀐 투수 전준호에게서 오늘의 3타점째를 뽑아내고 있는 최동수]

최동수는 이 날 4타수 2안타 3타점 1득점으로 제몫을 충분히 해 내었습니다. LG는 8회에도 한 점을 추가했죠. 점수는 9 대 2. 이제 타선은 거의 교체되었고 8이닝 동안 27타자를 상대로 110개의 공을 던지며 6탈삼진 5피안타에 2실점으로 에이스의 피칭을 보여 준 봉중근도 마운드를 최동환에게 넘겼습니다.


히어로즈 팬들 상당수는 이제 일어서서 경기장을 나가고 있었고, LG 팬들은 승리는 시간 문제라며 집에 가자를 외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신인 최동환은 제구가 흔들렸는지 믿을 수 없는 볼넷 행진을 벌였습니다. 첫 타자에게 스트레이트 볼넷, 두 번째 타자는 스트라이크 하나만 꽂았을 뿐 역시 볼넷으로 내보내더니 브룸바에게 적시타를 맞고 1실점했죠. 그러더니 클락, 송지만에게도 볼넷을 허용하며 무사 주자 만루에 밀어내기 한 점을 내주고 강판되었습니다. 이어 올라온 류택현은 장영석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다시 밀어내기 한 점을 내주고 강판되었죠.

8회까지 한 번도 들리지 않던 응원가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안타를 맞아도 만루 상황 되어도 XXX 등판하면은, 문제없어 문제없어~" 점수는 9 대 5. 무사 주자 만루. 홈런 한 방이면 동점이었죠. LG의 선택은 우규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6-4-3을 외쳤습니다. 무사 만루에서 한 두점은 어쩔 수 없으니 그것으로만 막자는 거였죠.

                [9회초 무사 만루 상황에서 심각해진 1루측 관중석]

위기의 순간에서 마무리는 마무리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교체된 강귀태를 맞아 1-2-3 병살타를 잡아내며 실점하지 않고 2아웃을 만든 후에 강정호를 1루수 땅볼로 가볍게 처리하며 경기를 끝낸 것이죠. 물론 넉점 차로 벌어진 상황이라 마음 편하게 던질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무사 주자 만루에서 무실점으로 경기를 끝내는 능력은 이렇게만 해준다면 얼마나 듬직한 마무리인가 싶었죠.

결국 LG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오늘의 수훈선수에는 봉중근과 박용택이 선정되었습니다. 봉중근은 8이닝 6탈삼진 5피안타(1피홈런)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구요, 박용택은 4타수 3안타(1홈런) 1볼넷 1타점 3득점으로 톱타자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지요.

개인적으로는 1이닝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올린 우규민도 오늘의 수훈선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9회초에 3점을 따라붙은 히어로즈가 그 기세를 다음날로 이어가지 못하게 찬물을 확 끼얹어 버렸으니까요.




이렇게, 10년 만에 찾은 LG 홈경기에서 저는 드디어 첫 승리와 첫 홈런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벌어진 경기에서 LG는 다시 6 대 2로 승리를 거두고 드디어 4위에 올라섰죠. 가을 잔치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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