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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하루 만에 자진사퇴했습니다. 금전관계를 가지고 있는 기업인과 골프여행을 다녀온 것에 대해 청문회에서 거짓 증언을 한 것을 두고 이명박 대통령은 고위 공직자가 청문회에서 거짓말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내정을 철회했다고 하네요.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된 모습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친서민, 중도실용,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이명박 정부의 달라진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지요.
개인적으로는 이번 검찰총창 인사 파동 전체를 놓고 볼 때, 이 정도의 결말이 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정도의 표현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도저히 검찰총창 감이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이 후보에서 자진사퇴했다는 것이 그나마 임명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 외에는 어떤 면에서 긍정적인 모습이 있는 것일까요. 이명박 대통령 본인은 검찰총장 내정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역시나 말로만 모든 국민을 포용하는 대통령이 되고자 할 뿐 여전히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만을 쓰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비선 라인'에 의한 추천이 맞다면 그 비판을 피해 갈 길이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 비판을 피하겠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청와대 인사 검증 시스템의 허점이 비판의 도마에 오를 겁니다. 조각 때부터 임명직 고위 공직자 후보가 발표될 때마다 한 번도 빠지지 않던 도덕성 문제가 이번에도 터진 거라면, 이건 더 이상 실수나 오해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겁니다. 검증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그나마도 '검증 시스템이 하마평에 오르는 사람들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다'는 비판 정도라면 다행입니다. 제 생각에는 검증 시스템의 검증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싶더군요. '도덕성이 좀 떨어지면 어때, 남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실력만 있으면 되는 것 아냐?'라는 게 검증 기준이라면 남은 임기 3년 반 동안 실수나 오해라는 얘기는 끊이지 않고 계속 될 것입니다. (솔직히 그 실력이란 것도 검증이 제대로 되는 건지는 모르겠네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천성관 후보자 입장에서도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겁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검찰 내부에서는 천 후보자가 아마도 서울지검장을 끝으로 변호사 개업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하던데, 그야말로 검찰총장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하고 이미 변호사 개업을 한 선배, 동기들을 따라서 그저 남들 하는 만큼 했던 것인데 검찰총장은 되지도 못하고 며칠간 망신만 당했지요. 청와대와 검찰에서 좋아하는 법과 원칙에 따르면 법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원칙이 있을 것이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건에서 차용증을 쓰고 빌린 돈이 포괄적 뇌물이라고 주장했던 검찰에서는 천성관 후보자의 경우도 동일한 사건으로 봐서 수사에 들어가야 하지 않는가 싶은데, 이렇게 되면 얼마나 불행합니까. 가족들이야 그런 돈 받고 누리면서 살아 왔으니 가족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지는 몰라도 아무튼 부끄러운 사람이 된 거죠. (물론, 이 정부에서 이런 식으로 낙마한 사람들은 죄다 한 자리씩 챙겨주는 것 같던데, 그렇게 된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겠군요)
여당은 여당대로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고 있을 겁니다. 여당에서 특별히 천 후보자를 지지했던 것 같지는 않고 그저 야당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 천 후보자를 감쌌던 것 같은데,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이런 사람을 내정해서 쓸데없는 데에 역량을 소모하게 만드느냐는 불만이 없을 것 같지는 않네요.
야당에서야 대여 공세를 펴기에 좋고 결국 천 후보자를 낙마시켰으니 스스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나아질 것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비판만 하는 야당 노릇에 만족한다면 모르겠지만요. 야당의 공격이 먹혔다기 보다는 이 정도라면 도저히 못 봐주겠다는 국민 여론의 분위기가 청와대가 내정 철회를 결정하는 데 계기가 되었다는 얘기도 있구요.
[대검찰청]
제일 황당한 건 검찰일 것 같습니다. 총창 사표내, 대검 중수부장 사표내, 임시로나마 조직을 이끌던 차장부터 고검장급 고위 간부는 천 후보자 내정 때문에 줄줄이 옷을 벗었는데 덜컥 내정자가 (그것도 개인적 흠결로) 자진 사퇴. 거기에 삼성 X파일 이후로 잠잠했던 스폰서 얘기까지 괜히 들춰졌으니 '장자연 사건에서나 듣던 스폰서를 검사도 키우냐'라고 친구한테 전화를 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한 지방검사의 얘기(Pressian)처럼 이게 왠 날벼락인가 싶을 겁니다.
결국 모두가 패자인 셈이지요.
그나마 우리 일반 국민들은 다행입니다. 청와대야 대통령의 의중을 살펴야 되는 것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 억울하고, 천 후보자야 개업할 생각이었는데 괜히 자기를 내정해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억울하고, 여당이야 대통령이 이런 사람 내정해서 우리만 힘들었다는 것이 억울하고, 야당은 일단 반격의 실마리를 잡아서 다행이고, 검찰도 수뇌부도 없이 한 달 넘게 공전기를 맞게 된 것이 억울하겠지만 우리는 억울할 것이 없잖아요. 어차피 우리는 이럴 것 알면서 대통령 뽑았던 거니까요. 이럴 줄 몰랐다면 후회가 되겠지만 그래도 뭐가 억울하겠습니까.
저들이 억울해하면 억울해 할 수록 우리가 억울해질 일이 많다는 것만 빼면요.
추가. 지나친 공세의 역풍을 우려한 민주당이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에 대한 사퇴 압박의 수위는 낮춘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모두가 패자지만 백 후보자만 승자가 되는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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